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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메아리가 된 사랑, 꽃이 된 청년 | 에코와 나르키소스 비극의 전말

by 미숏로지 2025.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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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부르던 숲속의 메아리

깊은 숲속, 나무들 사이로 속삭이는 바람이 흐르고, 새들이 노래하는 곳. 이곳에는 남몰래 사랑을 품은 님프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코(Echo). 늘 수다스럽고 활기찼던 그녀는 신들의 비밀을 전하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그녀의 지나친 말버릇이 결국 신들의 분노를 불렀다.

헤라 여신은 남편 제우스의 일탈을 감추려던 에코에게 징벌을 내렸다. “이제부터 네 목소리는 다른 이의 말만 따라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언어를 빼앗긴 그녀는 이제 사랑을 고백할 수도, 슬픔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단지, 남이 한 말을 반복할 수 있을 뿐.

그러나 운명은 그녀를 더욱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그녀는 곧 한 청년을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나르키소스(Narcissus).

자신을 사랑한 자, 나르키소스

나르키소스는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움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의 금빛 머리카락은 태양 아래서 빛났고, 깊은 호수처럼 푸른 눈동자는 누구라도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를 본 자는 모두 그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나르키소스는 누구의 마음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차가운 거절만이 그를 따랐다.

그의 어머니는 한때 신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보지 않는 한, 오래 살 것이다." 하지만 젊은 나르키소스는 이 예언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거울처럼 맑은 호수 근처로 걸어가게 된다.

바로 그때, 에코는 그를 보았다. 숲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나르키소스를 보고, 그녀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그에게 이끌렸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걸 수 없었다. 대신, 그의 말만을 따라해야 했다.

소리만 남은 사랑

"누가 거기 있느냐?"

나르키소스의 목소리가 숲을 가로질렀다. 에코는 그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 있느냐?"

"나와 함께 와라."

"함께 와라."

에코는 숲속에서 그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나르키소스는 그녀를 보자마자 물러섰다. "너냐? 네가 내게 말을 걸던 자?"

에코는 부끄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르키소스의 얼굴에는 기쁨이 아닌 거부가 스쳐갔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 한 마디에 에코는 심장이 조각났다.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숲속을 울렸다. 에코는 그날 이후 모습을 감추고, 단지 그곳에 남아 있던 것은 그녀의 목소리뿐이었다.

 

자신의 얼굴에 빠진 청년

나르키소스는 숲을 떠나 한 호수 앞에 도착했다. 그는 물속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한 사람을 보았다. 완벽한 얼굴, 깊고 아름다운 눈동자. 나르키소스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이 닿을 때마다 물결이 이는 바람에 그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내 곁에 있어 줘.”

그러나 호수 속의 사람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면 상대도 미소를 지었다. 그가 울면 상대도 울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사랑하게 된 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호수를 떠날 수 없었다. 물속의 그와 함께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잊은 채, 그는 오직 그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흐르고, 그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결국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말하였다.

"아, 나르키소스여, 넌 사라질지라도, 너의 아름다움은 영원할 것이다."

그의 몸이 땅에 닿는 순간, 그 자리에서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났다. 노란 중심에 하얀 꽃잎을 가진 꽃.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아는 나르키소스, 즉 수선화(Narcissus)였다.

 

남은 것은 오직 메아리뿐

나르키소스가 사라진 자리에는 여전히 호수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소녀의 목소리도 남아 있다.

"나르키소스."

바람이 불면, 다시 되돌아온다.

"나르키소스."

에코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산과 계곡을 떠돌고 있다. 우리가 산속에서 큰 소리로 외칠 때, 그 소리가 다시 돌아오는 이유는 어쩌면 그녀가 아직도 나르키소스를 부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비극의 이야기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우리에게 속삭인다.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정작 사랑을 주지 않는 사람,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을 품고도 영원히 떠나지 못하는 사람. 메아리가 된 사랑과 꽃이 된 청년, 그들의 비극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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